대한민국은 명실상부한 선진국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농장동물, 특히 양돈산업의 항생제 관리 수준을 들여다보면 과연 '선진국'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깊은 의문이 듭니다.
지난해 국내 동물용 항생제 판매량은 800톤대로 역대 두 번째를 기록했습니다. 더욱이 이 가운데 69%라는 압도적인 물량이 돼지에 집중된 것으로 집계되었습니다(관련 기사). 단순히 사용량이 많다는 점도 문제이지만, 그보다 훨씬 본질적이고 심각한 질문은 따로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어느 농장에서, 어떤 항생제를, 얼마나 사용하고 있는지 제대로 알고 있는가?"
안타깝게도 선뜻 "그렇다"고 답하기 어려운 것이 우리의 현주소입니다.
1. 허울뿐인 수의사 처방제와 기형적인 현장 구조
정부는 항생제 오·남용을 줄이기 위해 수의사 처방제를 도입하고, 대상 동물용의약품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왔습니다. 제도적 틀만 보면 항생제 남용을 통제할 첫 번째 관문은 이미 마련되어 있는 셈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처방전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입니다(관련 기사).
현행 수의사법상 수의사가 직접 진료하지 않고 처방전을 발급하는 것은 엄연한 불법입니다. 전화로 농장주에게 증상을 전달받는 식의 행위는 법이 요구하는 정당한 진료로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양돈 현장에서는 수의사의 직접 진료 없이 처방전이 발급되는 이른바 '무진료 처방' 문제가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파행 뒤에는 현실과 떨어진 보상 체계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법정 처방전 발급 수수료 상한선은 5천원에 불과하며, 현장에서는 이마저도 받지 않고 발급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방역 절차를 거쳐 돈사에 들어가 돼지의 상태를 직접 살피고 항생제 투여 여부를 판단하는 수의사의 시간과 노력을 전혀 담아내지 못하는 구조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자처방전 도입 역시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합니다. 전산시스템에는 어떤 약을 처방했는지만 남을 뿐, 그 처방에 앞서 실제 진료가 있었는지까지 보증해주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처방제라는 제도가 존재하는 것과, 그 제도가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입니다.
2. 추정치에 의존하는 부정확한 축종별 판매 통계
두 번째 문제는 통계의 불완전성입니다. 정부는 매년 축종별 동물용 항생제 판매량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수치를 실제 해당 축종에서 사용된 정확한 양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명확한 한계가 있습니다(관련 기사).
현재의 통계는 제조·수입업체가 제공하는 공급 자료를 기반으로 작성됩니다. 그러나 동물용의약품은 제조·수입업체에서 농가로 곧바로 공급되지 않으며, 도매상과 동물병원 등 복잡한 유통망을 거쳐 최종 판매됩니다.
게다가 대다수의 항생제는 돼지뿐만 아니라 소, 닭 등 여러 축종에 교차 사용 허가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최초 공급 단계의 통계만으로는 최종 소비처가 어느 축종인지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합니다.
3. '농장별 정확한 판매 데이터'는 이미 있다
정작 정확한 관리에 필요한 기초 데이터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정부의 동물용의약품등취급규칙에 따르면 도매상 등은 처방대상 동물용의약품을 판매한 경우 해당 내역을 3년간 보존해야 합니다. 즉, 항생제가 최종적으로 어디로 판매되었는지 추적할 단서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이 정보들이 국가 차원의 '농장별 항생제 관리정보'로 체계적으로 연결되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을 뿐입니다.
새로운 규제를 만들거나 농가에 또 다른 기록 의무를 지우자는 뜻이 아닙니다. 이미 유통 단계에서 작성되고 있는 판매 기록을 전산화하고 체계적으로 집계하자는 것입니다. 이제 항생제 관리의 기준은 '축종별 추정 판매량(몇 톤)'에서 '어느 농장에 어떤 항생제가 얼마나 판매되었는가'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농장별 항생제 구매량이 집계되면 정책의 실효성은 차원이 달라집니다. 사육 두수나 출하 두수와 연계하여 농장 간 항생제 사용 수준을 객관적으로 비교할 수 있게 되며, 사용량이 유난히 많은 농가도 가려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용량이 많은 농가를 곧바로 잘못된 농가로 몰아가거나 낙인을 찍자는 것이 아닙니다. 질병이 발생하면 동물의 치료와 복지를 위해 항생제를 반드시 사용해야 합니다. 핵심은 '왜 많이 사용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파악하고 불필요한 사용을 줄여나가는 데 있습니다.
수의사와 농가가 함께 데이터를 바탕으로 점검하고 개선해 나가는 것, 이것이 바로 선진국형 '진짜 항생제 관리'입니다.
4. 10년 만에 돼지 항생제 72% 줄인 영국
최근 영국 양돈산업은 지난 10년간 항생제 사용량을 72% 줄이는 데 성공했습니다. 2015년 277.7mg/PCU였던 사용량이 2025년 77.2mg/PCU까지 감소했습니다(관련 기사).
이 같은 성과의 배경 가운데 하나로 농장 단위 항생제 사용량을 기록·관리하는 전자 의약품 기록시스템(eMB)이 꼽힙니다. 농가가 항생제 사용 데이터를 자발적으로 입력하고 이를 산업 차원에서 집계함으로써 실제 사용 수준을 파악하고 감축 노력으로 연결해 온 것입니다.
영국의 사례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매우 명확합니다. "줄이려면 먼저 정확히 알아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올바른 항생제 관리는 대한민국 양돈산업이 소비자로부터 더욱 신뢰를 얻는 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입니다.
이득흔 기자(pigpeople100@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