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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고병원성 PRRS' 명칭에 대한 깊은 유감(遺憾)

'NADC34-like = 고병원성 PRRS'라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음.....모니터링도 과학적 정의를 논의할 구조도 없는 국내 상재성 질병 관리

지난 2024년 1월, '돼지와사람'은 '병원성이 높지만 '고병원성 PRRS'로 부를 수 없다?!'라는 제목의 기사(바로보기)를 게재했습니다.

 

 

당시 국내 양돈현장에서는 모돈의 유산과 폐사, 자돈의 높은 폐사율 등을 동반하는 'NADC34 유사 PRRS 바이러스'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었습니다. 피해가 워낙 심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고병원성 PRRS’라는 이름이 따라붙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미 ‘고병원성 PRRS’, 즉 HP-PRRS(Highly Pathogenic PRRS)라는 용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2006년 중국에서 큰 피해를 일으킨 뒤 베트남, 태국 등으로 확산한 PRRS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오랫동안 사용돼 왔습니다.

 

반면 국내에서 문제가 된 NADC34 유사 바이러스는 북미형 PRRSV의 리니지(Lineage) 1 계열입니다. 중국 HP-PRRSV와는 유전적으로 구별됩니다.

 

당시 취재에 응한 전문가들도 이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NADC34 유사 바이러스의 높은 병원성은 인정하면서도 기존 중국 HP-PRRS와 혼용해서는 안 되며 별도의 용어 정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기사 말미에 이렇게 썼습니다.

 

‘고병원성급? 강독형? 강독주? 정부든 수의계든 해당 바이러스에 대한 빠른 일반 명칭 정립이 필요해 보인다.’

 

그리고 2년 반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고병원성 PRRS’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 사이 무엇이 달라졌는지 궁금합니다. NADC34 유사 바이러스를 이렇게 부르기로 한 공식적인 논의가 있었습니까. 기존 중국 HP-PRRS와 어떻게 구별할지 정했습니까. 어느 정도의 피해를 일으켜야 ‘고병원성’이라고 할 수 있는지 기준을 마련했습니까.

 

필자가 알기로는 그런 과정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NADC34 유사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국내에서 분리된 특정 바이러스주의 높은 병원성이 실험적으로 확인됐고 현장에서 큰 피해를 경험한 농장도 있습니다. 당연히 경계해야 합니다.

 

다만 병원성이 높은 바이러스가 존재한다는 것과 특정 유전적 계통 전체를 ‘고병원성 PRRS’라고 부르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리니지 1A'는 유전적 분류입니다. 'NADC34 유사' 역시 유전적 유사성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반면 ‘고병원성’은 바이러스가 돼지에게 어느 정도의 질병과 피해를 일으키는가에 대한 평가입니다. 같은 NADC34 유사 바이러스 사이에서도 병원성에 차이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이러스의 특성과 실제 피해부터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국내 PRRS 방역의 더 근본적인 문제가 드러납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이 돌고 있는지부터 제대로 알기 어렵습니다.

 

미국에는 SDRS(Swine Disease Reporting System; 돼지 질병 보고 시스템)가 있습니다. 여러 수의진단기관의 자료를 통합해 PRRS 검사량과 양성률, 지역과 사육단계별 변화를 매달 공개합니다. ORF5 염기서열 분석을 통해 어떤 변이가 증가하는지도 추적합니다. 단순히 PCR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된 것과 실제 질병으로 진단된 사례도 구분합니다(관련 기사).

 

우리나라에는 이에 견줄 만한 상재성 돼지질병 모니터링 시스템이 사실상 없습니다. 대학과 민간 병성감정·진단기관 등에 상당한 자료가 축적돼 있지만 이를 모아 분석하고 산업 전체와 정기적으로 공유하는 장치는 마련돼 있지 않습니다.

 

 

또 하나의 빈틈이 있습니다.

 

새로운 바이러스가 등장했을 때 이를 어떻게 정의하고 부를 것인지 논의할 공론의 장 역시 마땅히 보이지 않습니다.

 

새로운 PRRS 바이러스가 확인되면 유전적 특성을 분석하고 임상 피해와 병원성을 평가해야 합니다. 기존 바이러스와의 관계도 따져봐야 합니다. 이후 별도의 이름이 필요하다면 수의학계와 현장 전문가, 정부 등이 머리를 맞대고 산업이 공통으로 사용할 용어를 정하면 됩니다.

 

그것이 과학적인 순서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현장에서 피해가 크다고 하니 먼저 자극적인 이름이 생깁니다. 업계와 언론이 이를 반복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새 공식적인 질병명인 것처럼 굳어집니다.

 

과학적 논의가 이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용 빈도가 이름을 굳혀버리는 셈입니다.

 

질병의 이름은 사소한 문제가 아닙니다. 농가의 위험 인식은 물론 백신 선택과 방역대책, 산업의 대응 방향에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더욱이 이미 HP-PRRS라는 용어가 별도의 역사적·학술적 맥락에서 사용돼 왔다면 더욱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필자가 ‘고병원성 PRRS’라는 표현에서 느끼는 '유감(遺憾)'입니다.

 

더 큰 아쉬움은 이런 일이 가능하게 만드는 국내 상재성 질병 관리의 현실입니다. 어떤 바이러스가 얼마나 확산하고 있는지 지속적으로 감시하는 시스템도 부족하고, 새로운 변이가 등장했을 때 그 위험성을 평가하고 명칭을 논의할 구조도 뚜렷하지 않습니다.

 

PRRS가 국내에서 문제가 된 지도 30년이 넘었습니다. 이제 새로운 변이가 나타날 때마다 그때그때 이름을 붙이고 대응하는 수준에서는 벗어날 때가 됐습니다. 모니터링과 위험평가,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과학적인 정의와 명명까지 하나의 질병 관리 과정으로 자리 잡아야 합니다.

 

2년 반 전 우리는 ‘빠른 명칭 정립이 필요하다’고 썼습니다.

 

아직도 같은 문제를 이야기해야 한다는 사실이 유감스럽습니다.

 

무엇이 돌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얼마나 위험한지 확인해야 합니다. 이름은 그 다음이어야 합니다.

 

적어도 질병의 이름만큼은 주먹구구식으로 정해져서는 안 됩니다.

 

이득흔 기자(pigpeopl10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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