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ASF 등의 가축전염병 발생을 막기 위해 정부는 일선 농가에 방역수칙 준수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일부의 경우 위반 시 과태료가 부과되며, 실제 전염병이 발생하면 살처분 보상금 감액의 구실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 방역수칙 중에는 농장 관리자뿐만 아니라 농장 인근 주민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 것도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일선 수의사들은 대표적으로 돈사 내부소독, 농장 앞 생석회 도포, 돈사 입구 전실 등을 지목합니다. 이들은 일상적인 방역도 중요하지만, 안전을 고려하지 않는 지금 방식을 앞으로도 고수해야 하는지 되묻고 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와 유사한 '돈사 내부소독'
지난 2011년 가습기 분무액에 포함된 살균제로 인해 많은 국민이 죽고 폐질환 등으로 고통을 받는 불행한 일이 발생한 바 있습니다. 이른바 '가습기 살균제 사건'입니다. 이와 비슷한 위험이 축산 현장에서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습니다. 바로 '돈사 내부소독'입니다.
돈사 내부소독은 대개 소독제 희석액을 분무나 안개 형태로 뿌리는데, 이 과정에서 작업자와 사육돼지가 희석액 입자를 그대로 흡입합니다. 일부는 눈에 들어가기도 합니다. 알데히드계·차아염소산계·4급암모늄계 등은 안구·호흡기 자극과 직업성 천식 위험과 연결된다고 알려져 있어, 밀폐되기 쉬운 돈사 구조에서는 위험이 더 커집니다. 보안경과 전용마스크 등 보호장비 착용을 하고 있는 농장을 찾아보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사람·가축에 직접적인 소독액 분사 금지'라는 한 줄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을 뿐입니다.
상시 화상·화재 발생 위험 요인 '생석회'
생석회는 물과 닿으면 강하게 열이 나고 곧바로 강알칼리성 물질로 변합니다. 안구나 피부에 닿으면 화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발열반응에 의해 화재를 유발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 생석회로 인해 화상 또는 화재 사고가 과거 여러 번 발생한 바 있습니다.
정부 입장에서 농장 앞과 진입로를 생석회로 하얗게 덮어 ‘방역 중’이라는 이미지를 얻고 싶겠지만, 농장뿐만 아니라 인근 주민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는 위험을 키우는 셈입니다. 방역 효과도 이론만 있지 실제 검증된 바도 없습니다. 생석회 대신 농장 입구 차량 소독으로 충분하다는 게 전문가의 대체적인 일치된 견해입니다.
유사시 농장 관리자의 탈출 가로막는 '전실'
▶높이 45센티미터 이상의 차단벽 ▶가로·세로의 길이가 각각 1미터 이상인 발판 ▶평상(平床) 형태의 구조물...정부가 원칙적으로 권고하는 전실의 기준입니다. 전실은 방역의 관문입니다. 그런데 화재 등으로 농장 관리자가 신속한 탈출이 필요한 경우 이를 가로막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화재가 야간에 발생하고 정전을 동반하는 경우는 더욱 그러합니다. 정부는 이른바 전실이 설치되어 있지 않은 쪽문(뒷문)의 경우 사용을 금하고 있습니다. 장금장치까지 요구하는 형편입니다.
올해 양돈장 화재로 2명이 숨지는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돈사 내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전실과의 직접 인과성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전실 구조와 운영을 피난 안전 관점에서 손보자는 요구는 타당합니다. 유사시 한 번에 밀고 나갈 수 있는 구조로 변경이 필요해 보입니다. 차단벽 대신 길이가 긴 발판 등으로 대체하는 것도 검토해보아야 합니다.
결국 방향은 분명해 보입니다. 내부소독은 흡입 노출을 통제하고, 생석회는 광범위 도포를 접고, 전실은 방역과 피난을 동시에 충족하도록 재설계하는 것입니다. 방역수칙과 안전수칙은 따로 갈 수 없습니다. 방역을 위해 안전을 희생시킬 수 없습니다. 현장의 실효성은 이 둘을 한 몸처럼 묶는 순간 비로소 올라갑니다.
이득흔 기자(pigpeople100@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