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돈장에서 스마트팜 구축을 위해 ICT 기자재를 설치할 때 농장주들은 한 목소리로 “간판만 바꿔 다시 나타나는 업체를 특히 조심해야 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겉으로는 스마트팜·첨단 ICT를 내세우지만 실제 성능이 떨어지거나 사후 관리가 이뤄지지 않아, 몇 달 만에 장비를 뜯어내고 막대한 비용만 떠안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새로 농장을 신축 중인 한 농장 대표는 “싼 게 비지떡일 수 있다. 가격을 맞추다 보면 용량이 맞지 않는 경우가 있다”며 “설치를 해도 안 한 것과 같은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돈에 맞추지 말고 농장의 필요에 맞춰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복잡한 것보다 단순한 장비가 낫다”
복합 기능을 한 몸에 넣은 장비에 대한 우려도 있습니다. 한 농장주는 “그 역할만 딱 하는 단순한 장비가 더 낫다. 복합적으로 이것저것 다 하는 장비는 권하지 않는다”며 “한 기능이 고장 나면 다른 기능까지 같이 멈추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습니다.
특히 전자 센서와 기판이 과도하게 들어간 장비는 양돈장의 먼지·가스 변화 등 특성상 고장률이 높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최근 업체들이 냉난방·환기·급이·센서 등을 ‘패키지’로 묶어 판매하는 사례가 늘고 있으나, 농장마다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기능까지 함께 들어가 유지비와 고장 위험만 키운다는 비판도 제기됩니다.
간판만 바꾸고 다시 나오는 업체 “가장 조심해야”
농가들이 가장 강하게 경계하는 대목은 이른바 ‘간판 갈아끼우는 업체’입니다. 한 농장주는 “예전에 ICT 사업한다고 들어왔다가 A/S도 제대로 안 해주고 센터 문을 닫다시피 했다가, 몇 년 뒤 다른 제품을 들고 다시 ICT 사업을 하겠다고 나오는 사람들이 있다”며 “이런 업체는 정말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다른 농장주는 “회사가 사실상 망한 뒤 이름만 바꿔 다시 나오는 곳이 몇 군데 있다. A/S를 하기 싫으니까 간판만 바꾸는 것”이라며 “한 우물을 오래 판 업체인지, 일정 규모와 경제력이 있는 회사인지 꼭 확인하고 일을 맡겨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농장주들은 공통적으로 ▲한 분야에서 오래 사업을 해온 경력 ▲재무적으로 안정적인 회사인지 여부 ▲지역 농가들 사이에서 쌓은 신뢰도를 꼼꼼히 따져볼 것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뭐든 다 한다”는 식으로 여러 분야를 한꺼번에 건드리는 업체일수록 정작 핵심 기술과 A/S에서는 허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대출 안 되면 시작도 못 한다”…자금 구조부터 점검
ICT·현대화 사업의 또 다른 함정은 융자 구조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계약부터 서두르는 경우입니다. 한 농장주는 “ICT 사업은 보통 10% 자부담, 지방비를 포함한 40% 보조, 50% 융자 구조로 알고 있다”며 “결국 50% 대출을 받아야 하는데, 농신보 한도가 이미 꽉 찼거나 담보가 부족하면 융자를 받지 못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대출이 가능한지, 한도가 남아 있는지, 담보 여건은 어떤지부터 반드시 확인하고 움직여야 한다”며 “이걸 모른 채 계약부터 했다가 나중에 자금이 막혀 애매한 상태로 남는 농가도 있다. 결국 신용도와 담보 여력이 있는 농가만 혜택을 보는 구조라는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뭐든 다 한다는 업체, 결국 전문성 떨어진다”
기자재 업체들의 ‘만능주의’도 현장의 불신을 키우고 있습니다. 한 전문가는 최근 전시회 현장을 전하며 “예전에는 컨트롤러 전문 업체, 분만틀 전문 업체처럼 각자 분야가 나뉘어 있었는데, 이제는 한 업체가 컨트롤러도 하고, 공사도 하고, 분만틀도 만들고, 별걸 다 한다”며 “그러다 보니 자기 본업이 아닌 분야에서는 설계·시공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어떤 업체 제품을 쓰느냐에 따라 같은 장비도 농장마다 평가가 완전히 달라진다”며 “기계를 잘 다루는 농장과 그렇지 못한 농장의 격차도 크지만, 기본적으로 업체의 전문성과 설계 능력 차이가 결과를 가른다”고 말했습니다.
“누구 말 하나만 믿지 말라…학습과 교육이 전제돼야”
현장에서는 기술에 대한 인식이 극단적으로 갈립니다. 어떤 농가는 “기계가 다 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걸고, 또 다른 농가는 “기계에 의존해서 뭐하느냐, 사람이 해야지”라며 ICT를 아예 부정하기도 합니다. 과거 장비 고장과 서비스 부실로 ‘쓴맛’을 본 농가는 특히 ICT에 부정적입니다.
전문가는 “과거 5~10년 전 경험만으로 현재 기술을 재단하는 것도, 반대로 ‘ICT만 도입하면 다 해결된다’고 믿는 것도 모두 위험하다”며 “장비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농가도 공부를 해야 하고, 업체 역시 교육과 지원에 적극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양돈농가들이 입을 모아 강조하는 공통된 메시지는 한 줄로 정리됩니다. 간판만 바꿔 나오는 업체와 싼 값에만 맞춘 장비를 경계하고, 농장에 맞는 용량·성능, 자금 여건까지 꼼꼼히 따져보는 것만이 스마트팜 실패를 막는 첫 번째 방어선입니다.
이근선 기자(pigpeople100@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