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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식품부는 철학이 없고, 협회는 전략이 없다

8대 방역시설 전국화 이미 오래 전부터 예견된 정책...협회 대응이나 준비 미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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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농림축산식품부(이하 농식품부)가 모돈이력제 도입과 생석회 강제 도포에 이어 이번에는 8대 방역시설의 전국 농가 의무화를 추진하기 위한 법제화에 나섰습니다(관련 기사). 농식품부의 계획대로 법제화가 그대로 이루어진다면 앞으로 8대 방역시설의 온전한 설치와 운영 없이 돼지 사육은 사실상 불가능해질 전망입니다. 

 

 

이같은 소식에 대다수의 일선 농가들은 크게 분노했습니다. 멧돼지 확산에 대해서는 번번히 실패하는 상황에서 농장에게만 번번히 강화된 방역 조치를 강요하고 있는 농식품부를 비판했습니다. 게다가 정상적인 8대 방역시설 설치와 운영에도 불구하고 ASF가 발생할 경우 책임은 농장에게만 지울 것이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에서 비판의 목소리는 더욱 컸습니다. 

 

관련해 한 농가는 모 대선 후보가 우리나라 관료의 폐해를 지적하는 말을 인용하며 농식품부의 행태를 꼬집었습니다. 해당 후보는 기업인과 간담회에서 기업인들이 체감규제가 늘고 있다는 지적에 “(우리나라 관료들은)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자신을 위해 규제를 강화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탁상행정에 찌든 농식품부에 정확하게 들어맞는 표현입니다. 

 

 

농식품부의 가축전염병 관련 목표는 모호합니다. 단지 '농장에서의 발생은 없애고, 발생하더라도 최소화하며, 발생기간은 최대한 끝낸다'라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때문에 여전히 규제 및 살처분 중심의 방역정책에 크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오제스키병이나 돼지열병, 구제역만 보더라도 청정화 선언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단지 오늘 발생만 안하면 된다는 식입니다. 발생을 하더라도 어떡하든 농가 책임이어야 합니다. 

 

겉으론 방역이 농가와 산업을 위한다고 하지만, 결국은 농식품부 스스로를 위한 것입니다. 농가를 믿지 않습니다. 민간 스스로 방역체계를 만들어가는 것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민간 수의사는 방역에 있어 배제된지 오래입니다. 

 

요약하면 농식품부의 방역 정책은 한마디로 '철학'이 없다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8대 방역시설 전 농가 의무 법제화 추진에 있어 대한한돈협회(이하 한돈협회)도 또 다른 비판의 대상입니다. 한돈협회는 농식품부가 관련 입법예고를 한 날 긴급 성명서를 통해 '농식품부가 기습 입법예고를 했다'며 '농식품부 해체' 주장까지 펼쳤습니다. 

 

하지만 8대 방역시설의 전국화 추진은 이미 1년 전부터 예고된 사항이었습니다. 1년 동안 협회는 무엇을 했는가 비판이 나옵니다. 

 

지난해 1월 김현수 장관은 영월서 ASF 멧돼지가 발견된 것과 관련해 야생멧돼지 ASF 발생지역 확산에 따른 특별 방역대책을 발표하며서 처음으로 8대 방역시설의 전국 농장 설치 계획을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한돈협회를 중심으로 전국 모든 양돈농장에 강화된 8대 방역시설을 조속히 설치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김 장관의 다소 황당한 발언이라 생각했지만, 실제 한돈협회는 발표 이후 양돈조합, 사료회사, 수의사 등을 대상으로 8대 방역시설 관련 컨설턴트 양성 교육을 실시했으며, 이들과 함께 전국을 돌며 시설 설치 관련 설명회를 가졌습니다. 이 때문에 한때 한돈협회가 농식품부의 산하 기관으로 전락했다는 탄식이 산업 내부에서 흘러나왔습니다. 

 

지난해 1월 이후에도 농식품부는 수차례 8대 방역시설의 전국 설치 계획을 반복해 밝혔습니다. 일선 지자체에는 이를 기정사실화하며 농가들에게 설치를 독려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12월 초에는 전국 모든 양돈장에 대해 8대 방역시설 설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가축전염병 예방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한돈협회에 보내 의견 청취를 요구했습니다. 

 

엄밀히 한돈협회에는 이번 입법예고에 앞서 1년여 이상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간 협회의 준비나 대응은 미흡했습니다. 전략적이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이번에도 정부가 만들고, 협회가 따라가야만 하는 상황이 반복된 것입니다. 

 

 

한돈협회는 한돈산업의 구심점입니다. 정부 정책 결정에 있어 우선 협상 대상자입니다. 협회라는 조직을 변화시키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농식품부보다는 쉽습니다. 그리고 현실적입니다. 협회의 변화를 통해 농식품부를 변화시켜야 합니다. 이 때문에 여전히 한돈협회를 응원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얼마 전 한돈협회 손세희 회장은 돼지와사람과의 미팅에서 '앞으로 협회를 다가올 이슈에 대해 미리 준비하고 대응할 수 있는 조직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바라던 바입니다. 한돈협회가 바뀌었다는 모습을 기대해 봅니다. 당장은 이번 8대 방역시설 전국 설치 의무화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지 두고 볼 일입니다. 

 

이득흔 기자(pigpeople10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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