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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복지

[기획연재] 지각력 있는 존재로서의 삶

독일에서 시사점을 찾다(6)-독일의 농장동물 생츄어리, '에어들링스 호프'
아산나눔재단 아산프론티어아카데미 모소리팀 김현지(동물권행동 카라 사무처장)

모소리 프로젝트 팀은 지난 9월 24일 이번 글로벌스터디의 마지막 행선지인 '에어들링스 호프(Erdlingshof)'로 향했다. 뮌헨에서 자동차로 약 2시간 거리의 쾰른부르그는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에서도 체코와 국경이 가까운 동쪽, 국유림과 국립공원 근처였다. 

 

 

에어들링스 호프는 독일에 위치한 동물들의 생츄어리이다. '지구인의 터전'이라는 뜻의 이름에는 동물을 포함하는 모든 생명체가 지구상에서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모두가 기쁨을 느끼며 살아가기를 원하고, 고통과 두려움, 괴로움은 피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경에 압도되어 갔던 모소리 팀은 에어들링스 호프에 도착하자 '지각력 있는 존재'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동물들의 모습에 더욱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꼈다.

 

소, 돼지, 닭, 말, 양, 염소, 토끼, 칠면조 등 축산 동물로 알려진 여러 종류의 동물 130여 마리가 이곳에서 산업의 굴레를 벗고 안식을 얻고 있었다. 에어들링스 호프에서 이들은 동물의 종 대신 이름으로 불린다.

 

 

환하게 웃는 얼굴로 명랑한 에너지를 발산하면서도 시종일관 차분하게 생츄어리 방문객을 안내하던 개 '루카스'가 루카스일 수밖에 없는 것처럼, 이곳에선 돼지들도 ‘카르스텐’, ‘알료샤’, ‘프리다’, ‘베네딕트’, ‘세바스티안’, ‘리자’, ‘로시’, ‘론야’, ‘한니발’, ‘넬리’, ‘보니’, ‘브로니’ 등 고유한 이름으로 불렸다.

 

과거 축사였던 부지는 요하네스 융(Johannes Jung)의 헌신으로 2014년 농장동물 생츄어리로 재탄생했다. 약 6만 평의 다채로운 공간 곳곳에는 동물을 좀 더 편안하게 해 주기 위한 요하네스와 직원들의 손길이 스며 있었다. 그중엔 돼지 진흙목욕을 위해 만든 웅덩이도 있다.

 

에어들링스 호프에는 12마리의 돼지가 있다. 절반은 공장식 축산에서 구조되었고, 나머지 절반은 야생 멧돼지로 생존 위기 속에서 구조되었다. 반려 돼지로 살다 구조된 경우도 있었는데 브로니는 중앙의 돼지 구획이 아닌 앞뜰에서 머물렀다.

 

 

이들은 저마다 개성이 있고 성격도 제각각이며 좋아하는 것, 자주 가는 장소, 어울리는 친구도 다르다. 에어들링스 호프에는 충분한 공간과 다양한 지형이 있어 하루 종일 좋아하는 활동을 마음껏 할 수 있다. 외부에서 풀을 먹거나 햇볕을 쬐거나 진흙목욕을 해도 되고, 지붕 있는 오두막에 들어가 짚더미 속에서 껴안고 자도 된다. 모든 건 돼지들 스스로의 선택에 달려있다.

 

2017년 3월 독일 함부르크에서 돼지 '빅토리아'가 도축장 트럭에 수송되던 중 탈출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빅토리아는 탈출했던 장소인 터널을 무사히 빠져나왔고 구조 후 동물보호소에 인계되었다가 에어들링스 호프로 오게 됐다. 4개월령의 덜 자란 체구로 도축되려다 열악한 수송 현장에서 빠져나온 빅토리아의 이야기는 언론과 대중의 큰 주목을 받았고 공장식 축산의 문제를 알리는 상징적 존재가 됐다. 빅토리아는 에어들링스 호프에서 행복한 3년을 보낸 뒤 2020년 질병으로 삶을 마쳤다.

 

에어들링스 호프에 사연 없는 동물은 없었다. '알료샤'는 공장식 돈사에서 심하게 병들었던 돼지다. 구조자들에게 발견되었을 때 알료샤는 3개월령이었고 걷지 못하는 상태였다. 앞다리로만 거친 콘크리트 바닥 위를 끌며 몸을 움직이고 있었는데 농장의 도태 대상이었다. 하지만 알료샤는 운 좋게 구조되었고 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하반신 마비로 진단돼 몇 주간 병원에서 집중 치료를 받은 결과 알료샤의 신경이 회복되었고 다시 걸을 수 있게 됐다.

 

'프리다'는 바덴뷔르템베르그 주의 한 돼지 농장에서 태어났고 약 100km 떨어진 바이에른 주에서 발견됐다. 정처 없이 헤매던 프리다를 수의관청에서 잠시 돌봤고 수의관청은 프리다를 살리고자 하는 시민들의 요청으로 에어들링스 호프에 연락했으며 프리다의 운명은 달라졌다. 

 

 

'베네딕트'는 농장에서 도축되기 직전 우연히 이 장면을 목격한 어느 시민의 간절한 요청에 의해 돈을 지불하고 구조됐다. 베네딕트는 그날의 유일한 생존자였다. 에어들링스 호프에서는 트레일러 안을 신선하고 부드러운 짚으로 깐 다음 현장으로 출발했는데 농장은 도축된 돼지들의 피가 바닥을 덮고 있는 등 참혹했다. 두려움에 떨고 있던 베네딕트는 패닉 상태였다. 하지만 생전 처음 짚이라는 것을 보고 트레일러 안 탐색을 시작, 에어들링스 호프로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도축장에서 구조를 요청한 사례도 있다. '엘라'라는 소는 어렸지만 농장의 도태 대상이었고 농장주는 도축장에 엘라를 데려가 죽여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도축장 직원들은 차마 어린 엘라를 죽일 수 없었고 에어들링스 호프에 구조를 요청했다. 에어들링스 호프는 엘라를 위해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 성장한 엘라는 에어들링스 호프에서 가장 힘이 센 소 ‘벤’ 곁에서 풀을 뜯고 있었다. 내년에 엘라가 배우로 출연하는 영화가 독일에서 개봉한다고 한다. 

 

'페르디난드'는 유기축산 농장에서 사육되었으나 2020년 도축장에서 도살 직전 탈출한 소다. 행방불명된 페르디난드를 찾기 위해 요하네스가 직접 인근 숲을 2주가량 수색하였고 기적처럼 페르디난드를 구조했다. 에어들링스 호프에서 살던 소 '미하엘'이 페르디난드를 찾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단다.

 

모소리 팀은 미하엘과 페르디난드가 얼굴을 비비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페르디난드는 에어들링스 호프에서 삶의 평온을 찾은 듯했다. 요하네스는 "유기축산 농장이라고 해도 예정대로 도축이 이뤄졌다면 우리는 페르디난드의 지금 이 모습을 볼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방목이 기본인 에어들링스 호프에서 동물은 그 자체로 고귀한 존재이며 살아 있기에 기쁘고 행복하다. 축산업을 통해 생산되어 상품 가치로 환원되고, 중간에 도태되지 않아도 수명 대비 매우 어린 나이에 도축되고 있는 동물의 죽음은 더 이상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어선 안된다. 에어들링스 호프는 공장식 축산 반대 피케팅을 하지는 않지만 날마다 저마다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살아 숨 쉬는 농장동물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전파함으로써 시사점을 던진다.

 

 

최근 사망한 돼지 '보니'는 17세였고 에어들링스 호프에서 제일 나이가 많았다. 마음 아픈 사별이었지만 축산에서 암퇘지는 3~4세, 수퇘지는 6개월령에 도축된다.

 

다음은 생츄어리에 꽂혀 있는 그림 팻말의 일부다. "죽지 않고자 하는 누군가를 죽이는 인도적 방법은 없다", "동물을 먹기로 스스로 결심했을 때 당신은 몇 살이었나요?", "나는 왜 35일만 살 수 있나요?" 등등.

 

연간 1천 명이 이곳을 방문하는데 다녀가는 사람들은 스스로 비건을 실천한다고 한다. 독일은 식당에 비건 옵션이 많고 슈퍼마켓에서도 대체품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독일의 슈퍼마켓 체인 ‘알디(ALDI)’를 방문해 보니 축산물 코너에 “더 나은 동물복지”라고 쓰여있고 축산물마다 분명히 구분되는 동물복지 사육환경 표시가 5단계로 구분되어 있었다. 참고로 알디는 2030년까지 신선육, 육가공품, 우유 등에 대하여 동물복지 3단계 이상(3, 4, 5단계)만 취급하겠다는 공약을 세웠다.

 

에어들링스 호프에서 초창기부터 일해온 비르기트 슐체(Birgit Schulze)는 모소리 팀과의 회의에서 독일에 약 100개의 생츄어리가 있다고 했다. 한국의 생츄어리는 최근 몇 년 사이 몇몇 동물보호단체를 중심으로 이제 막 태동하기 시작한 상태다.

◆ 양돈 동물복지, 한국이 묻고, 유럽이 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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