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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농장 이야기

[김동욱의 돼지농장 이야기(18)] '난 귀한 몸이셔~' 재래돼지 보기가 힘들어진 이유

'한별팜텍'의 '김동욱 수의사'가 전하는 동물복지 이야기

[본 원고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양돈산업에 대한 올바른 정보와 이해를 돕고자 기획된 글 입니다. 초고속정보화 시대를 맞아 지속가능한 한돈산업을 위해 소비자들과의 소통과 공감이 점차 요구되고 있습니다. 잠시 일반인의 눈으로 양돈산업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돼지와사람]

 

돼지를 흔히 다산( 多産 )의 상징이라고 얘기합니다. 사람이나 다른 포유류에 비해 한 번 분만에 여러마리의 새끼를 낳기 때문인데요. 최근 유럽 지역에서 개량된 돼지는 평균적으로 한번에 17, 18마리의 새끼를 낳는다고 하니 정말 다산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우리나라 재래돼지는 한 번에 낳는 새끼의 수가 그닥 많지 않았습니다. 체형도 상대적으로 작고요.

 

그래서인지 우리가 돼지를 나타낼 때 사용하는 한자에도 이런 특징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돼지를 나타내는 한자로 '돈( 豚 )'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중국은 '저( 猪 )'를 사용합니다. 저팔계( 豬八戒 )할 때 그 저가 바로 중국에서 돼지를 나타내는 한자죠(우리나라였다면 돈팔계였을 텐데요). 왜 중국과 우리나라가 사용하는 한자가 달랐을까요?

 

 

바로 돼지의 크기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한자 사전을 찾아 보면 저( 猪 )는 돼지를 , 그리고 돈( 豚 )은 작은 돼지를 의미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중국돼지와 우리나라 돼지의 크기가 달랐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의정부에서 호조의 정문에 의거하여 아뢰기를,

"요동( 遼東 )에 들어가는 사람이 있을 때마다 염소와 돼지를 사서 가져오게 하고, 또 통사( 通事 통역관 )로 하여금 먹여 기르고 불까는 법(거세)을 배워 익히게 하여 그대로 분예빈시( 分禮賓寺 나라행사에 쓸 가축을 기르던 곳) 별좌( 別坐 5품 관직)를 삼아서 먹여기르는 것을 감독하게 하고, 또 전에 기르던 제사 소용의 중국 돼지는 토종과 잡종이 되어 몸이 작고 살찌지 않아서 제향에 합당하지 아니오니, 함께 사 가지고 오게 하사이다." 하니, 그대로 따랐다.

세종 107권, 27년(144 을축/ 명 정통( 正統 ) 10년) 1월 18일(임진) 3번째 기사

 

이 기사에 따르면 중국의 돼지가 국내 토종 돼지와 교잡이 되면서 몸집이 작아지고 살이 찌지 않게 되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요. 이로 미루어 국내 토종돼지가 중국돼지에 비해 체형이 작고 비교적 날씬한 모습이었단 걸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저 기사에서 몇 가지 조선시대의 돼지 사육과 관련된 내용을 더 알 수 있는데요.

 

첫 번째가 바로 수퇘지의 거세를 당시에도 실시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중국어를 잘하는 역관을 중국에 보내 돼지 사육기술과 더불어 거세의 기술을 배워오도록 했다는 것이죠. 이렇게 기술을 배워온 관리는 분예빈시의 별좌로 임명해 돼지 사육을 감독하도록 했다는 내용이 있는데요. 여기서 분예빈시란 육조(이, 호, 예, 병, 형, 공조)의 하나인 예조의 부속기관으로 중국 사신을 접대하는 기관입니다.

 

왜 중국 사신을 담당하는 기관에서 돼지를 길렀을까요? 그 이유는 조선시대만해도 돼지고기를 사람들이 즐겨먹지 않았고 주로 돼지를 키우는 이유는 중국에서 오는 사신을 접대하기 위해 키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중국 사람들이 돼지고기를 즐겨먹었음을 알 수 있죠.

 

참고로 현재 세계에서 돼지를 가장 많이 키우는 나라가 바로 중국이고, 그렇게 많이 키우는데도 국내 수요를 아직 감당하지 못해 수입을 하고 있을 만큼 중국인의 돼지고기사랑은 예나 지금이나 엄청납니다.

 

 

또 재미있는 내용은 돼지가 한 번 키우기 시작하면 그 수가 금방 늘어나 감당하기 힘들었다는 내용이 조선왕조실록에 종종 보입니다. 재래종이라 지금의 개량된 돼지에 비해 낳는 새끼 수가 함참 적었는데도 말이죠.

 

당시 국내에서는 그다지 수요가 많질 않은데 사신을 접대하기 위해 항상 돼지를 키워야 했고, 그러나 보니 한 번에 여러 마리의 새끼를 낳는 돼지의 수가 금세 늘어나 곤란한 상황이 발생했죠. 그래서 이를 받아 키우길 원하는 백성들에게도 나눠젔다고 합니다. 이런 이유에서 돼지가 다산이나 풍요, 부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런 재래돼지는 왜 보기 힘들까요?'

 

너무 작고 상대적으로 새끼를 덜 낳다보니 사람들이 키우지 않으면서 점점 그 수가 줄어든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서 재래돼지를 설명해 놓은 부분을 보면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있는데요. 1920년대 발간된 '조선농업편람'에는 "재래돼지는 피모가 흑색으로 체격은 왜소하고 체중은 22.5~32.5㎏이며, 머리는 길고 뾰족하며, 배는 심히 하수되어 있고, 만숙에다 비만성이 없으나 체질은 강건하고, 번식력도 양호하며, 특히 육미는 조선 사람들의 입맛에 적합한 것 같다"고 기술하고 있고요.

 

조선총독부 권업모범장 '성적요람(1927)'에는 "조선의 재래돈은 체질이 강건하고 번식력이 강하나 체격은 극히 왜소하여 6~7관(22.5~26.25㎏)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성숙이 늦고 비만성이 결핍하여 경제가치돈 중 최 열등하여 이를 개량하는 것이 극히 긴요하다"라고 기록해 재래돼지의 개량 필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이렇게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재래돼지 개량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재래돼지가 점차 사라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재래 흑돼지에 대한 이야기가 널리 알려진 제주도에서도 진짜 재래돼지를 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지금 제주에서 키우고 있는 대부분의 흑돼지는 재래 흑돼지에 외래 흑돼지종이 교잡되어 수대를 지나온 품종이라 옛 재래돼지의 모양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또 제주도에서 가장 돼지를 많이 키우는 한림지역은 사실 재래돼지가 아닌 백색돼지를 키우면서 제주도 돼지 사육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이는 이시돌목장을 설립하신 고 맥그린치 신부님이 인천에서 새끼를 밴 백색돼지 한 마리를 제주도로 들여와 그 새끼들을 주변의 주민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시작했다는 유명한 이야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이제 재래돼지는 쉽게 보기 어려운 귀한 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 우리가 살던 이 땅에서 지내오던 재래돼지를 보호하고 지키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국립축산과학원에서는 전국에 흩어져있는 재래돼지를 발굴하고 명맥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앞으로는 작고 날씬한 재래돼지를 좀 더 자주 볼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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