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경남 산청(78차, 관련 기사)과 전남 함평(79차, 관련 기사)에서 발생한 ASF 확진 과정을 되짚어보면, 우리 방역체계에서 일부 허점이 드러난 가슴철렁한 사건이었습니다.
두 농장 모두 초기 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이어진 확대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으며 방역 골든타임을 허비했습니다. 산청은 확진까지 무려 24일, 함평은 13일이 걸렸습니다. 이 기간 방역당국은 특별 방역관리(3일 간격 폐사체 검사, 출하돼지 20% 정밀검사)했다고 하지만, 함평의 경우 실제 양성개체가 도축된 것이 나주 소재 도축장에서 뒤늦게 확인(13일)되었습니다. 운좋게도 전날부터 시행된 단미사료용 혈액탱크 시료 ASF 모니터링 덕분이었습니다.
여하튼 산청·함평 확진 사례 모두 그간 추정되었던 '검사 과정의 오류'도, '바이러스의 변이(만성형)'도 아니었습니다. ASF 바이러스 특유의 '느린 전파성'을 간과한 채, 현장 전문성이 결여된 '기계적 시료 채취'가 불러온 인재(人災)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느린 전파’의 함정, 무작위 검사는 무용지물
ASF는 구제역처럼 공기를 통해 폭발적으로 퍼지지 않습니다. 개체 간 직접 접촉을 통해 서서히 옮겨가는 특성이 있습니다. 감염 초기에는 농장 내 돼지 중 단 몇 마리만 바이러스를 보유한 상태가 유지될 수 있습니다.
이 시기에 방역관이 농장을 방문해 규정(SOP)대로 무작위 샘플링을 수행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통계적으로 바이러스가 없는 '깨끗한' 돼지가 뽑힐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산청과 함평 농장에서 '양성 후 음성'이라는 혼란스러운 결과가 반복된 이유입니다. 결국 바이러스가 농장 내 임계점을 넘어 대량 폐사가 발생하고서야 뒤늦게 확진 판정이 내려졌습니다. 이번 산청 사례가 대표적입니다(3.15-16 55일령 돼지 14두 폐사, 16일 검사서 34두 중 32두, 94% 양성률).
방역관의 한계와 시료 선택의 실패
이번 사태에서 가장 아쉬운 대목은 '시료 선택'입니다. 최초 혀끝 가검물이나 폐사체처리기에서 양성이 확인됐을 때, 현장에 투입된 방역관은 행정적 절차와 채혈의 용이성에 치중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돼지의 미묘한 활력저하나 식욕부진을 잡아낼 '임상적 안목'이 부족한 상태에서 진행된 무작위 채혈은 바이러스의 은신처를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돼지의 생리를 깊이 이해하는 현장 임상수의사가 시료 채취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더라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함평 사례의 경우 양성개체를 찾아낸 것은 민간 돼지전문 수의사 한 명으로 알려졌습니다(16일 검사서 81두 중 21두, 26% 양성률). 민관 협력 검사 시스템을 마련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음성 판정이 나왔으니 안심해도 된다'는 안일한 행정이 바이러스에게 증식할 시간을 벌어주었습니다. 그 사이 출하가 이루어졌습니다. ASF와의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서류상의 매뉴얼을 넘어 현장의 안목을 믿는 유연하고 전문적인 대응이 시급합니다.
이득흔 기자(pigpeople100@gmail.com)


































